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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름 극장가에서 "이건 꼭 봐야 해"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신반의했던 경험, 다들 있으실 겁니다. 저도 그랬습니다. 그런데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조조 상영을 보고 나왔을 때, 그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.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(HOPES)는 '곡성' 이후 10년 만의 귀환작으로, 크리처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장르 안에서 국내 영화의 기준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.
조조에도 꽉 찬 아이맥스관,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
솔직히 말씀드리면, 조조 상영이라 좌석이 여유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. 그런데 그 넓은 용산 아이맥스관이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차 있었습니다.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라는 타이틀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있겠지만, 입소문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았습니다.
아이맥스(IMAX)란 일반 상영관 대비 최대 40% 더 넓은 화면 비율과 강화된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상영 포맷입니다. 이 영화는 그 포맷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된 작품입니다. 홍경표 촬영 감독의 트래킹 샷이 특히 그 점을 잘 살렸는데, 트래킹 샷이란 카메라가 피사체를 따라 이동하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관객이 사건 현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. 초반 30분은 제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단연 압권이었습니다. 카메라가 마을 곳곳을 훑는 동안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.
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일부러 후기를 많이 찾아보지 않으려 했습니다. 극호와 극불호가 동시에 쏟아지는 작품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입장했는데, 어차피 직접 보지 않으면 그 온도차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.
나홍진 감독의 연출 방식, 이번엔 무엇이 달랐나
나홍진 감독은 '추격자', '황해', '곡성'을 통해 장르 영화의 문법을 자기 방식으로 해체해 온 감독입니다. 일반적으로 크리처물은 야간 장면을 주로 활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, 시각 효과의 허점을 어둠으로 감추기 쉽기 때문입니다. 제가 직접 보니, 호프는 이 관행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. 낮 배경의 액션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면서, 크리처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.
미장센(mise-en-scène)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. 이는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, 즉 배우의 위치, 조명, 소품, 배경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. 호프에서 이 미장센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. 건물 한가운데 뚫린 구멍, 그 안에서 발견되는 시신들, 거대한 손자국이 남긴 흔적들. 이 모든 것이 설명 없이 화면에 제시되는 방식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합니다.
인물들의 대사가 극도로 짧고 반복적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.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는데, 생각해보면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실제로 하는 말이 그런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. "거기 있어", "이쪽으로", "뛰어". 이 단편적인 대사들이 오히려 혼란의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.
러닝타임은 156분으로, 전작 '곡성'과 정확히 일치합니다. 우연의 일치라고 하는데, 그 사실 자체가 묘하게 나홍진 감독다운 면이 있습니다.
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에 더하는 것
황정민이 주연을 맡는다는 것,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대치가 올라갔습니다.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그 기대가 충족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. 거창한 독백이나 감정적인 장면이 아니라, 극도로 제한된 상황 안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에서 황정민의 내공이 드러납니다.
앙상블 연기(ensemble acting)라는 표현이 있습니다. 한 명의 주연이 이끌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배우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서사를 만들어가는 연기 방식입니다. 호프는 황정민 중심이되, 그 주변을 채우는 인물들의 반응과 움직임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.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를 좀 더 현실적인 공포에 가깝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.
제 경험상 이런 장르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력이 주목받는 경우는 드문데, 호프에서는 황정민의 존재 자체가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.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포장지 안에 배우의 연기가 진지하게 담겨있다는 점이, 이 영화를 단순한 자극적 오락물과 구분 짓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.
한국 영화진흥위원회(KOFIC)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상업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평균 관객 수 300만 명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(출처: 영화진흥위원회). 호프는 그 기준을 넘어야 다음 편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.
이 영화, 어떤 관객에게 맞고 어떤 관객에게 맞지 않는가
영화를 보고 나서 도파민이 터지는 느낌이 꽤 오래 지속됐습니다. 그게 영화의 힘이기도 하지만, 동시에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합니다. 서사적 인과관계나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를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"이게 무슨 이야기야?"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. 저도 그 부분을 완전히 부정하기 어렵습니다.
영화적 경험의 관점에서 호프를 보는 관객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.
- 압도적인 시각·청각 자극을 원하는 관객: 이 영화의 명확한 타깃입니다. 아이맥스 또는 돌비 시네마 관람을 적극 권장합니다.
- 탄탄한 서사와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관객: 전반부의 몰입감은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, 후반부에서 다소 당황할 수 있습니다.
- 나홍진 감독의 전작 팬: 곡성의 서사적 깊이를 기대한다면 결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.
- OTT 시청을 고려하는 관객: 개인적으로 강하게 반대합니다. 이 영화는 극장 상영을 전제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.
돌비 애트모스(Dolby Atmos)란 천장과 측면 스피커를 포함한 입체 음향 시스템으로, 소리의 방향감과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기술입니다. 마을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짐승의 포효 소리는 이 포맷에서 들어야 비로소 그 의도가 전달됩니다. 제가 직접 아이맥스관에서 경험했을 때, 그 사운드가 좌석까지 진동으로 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. OTT의 TV 스피커로는 재현이 불가능한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.
영화진흥위원회의 2025년 상반기 극장 관람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, 프리미엄 포맷(아이맥스, 4DX, 돌비 시네마)의 선택 비율이 전년 대비 약 18%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(출처: 영화진흥위원회). 호프는 이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영화입니다.
올여름 극장가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거리를 남기는 영화는 드뭅니다. 서사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, 액션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물로서 호프는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합니다. 손익분기점을 넘겨 다음 편이 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으니, 그것 자체가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솔직한 평가입니다.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권합니다. 나중에 OTT로 보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.